Apple Inc.에 부쳐

지난주 맥월드 키노트에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사명을 Apple Computer Inc. 에서 Computer를 뺀 Apple Inc.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뭐 좋다. 이제 애플은 컴퓨터만 만드는 회사도 아니고 사명을 살짝 바꾼다고 해서 애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사라진 애플은 왠지 서글프다. 나름대로 골수 맥유저로 ‘Apple’이라는 브랜드 보다 ‘Macintosh’이라는 브랜드에 더 충성하던 내겐 맥보다 아이팟과 아이폰, 그리고 애플TV를 더 중요시하는 애플이 마땅치 않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단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멀리하는 약간은 이기적인 느낌이랄까?

지금의 애플은 어떤 면에서 마이클 스핀들러(애플의 4대 CEO)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존 스컬리가 방치했던 애플의 잠재력을 다시 일깨우고자 무던히 노력했지만, 표면적으로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했던 그 시절 말이다. 마이클 스핀들러와 짧은 기간 그의 후임이었던 길 아멜리오 시절(1993-1997), 애플은 가장 많은 제품 라인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 형편없는 실적을 올리고 있던 기간이었다.

강력한 서버에서부터 사과 마크가 달린 스피커까지 생산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결과적으로 이 시절 생산품은 애플 콜렉터들 사이에서 꽤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최초의 PDA인 뉴튼도 이 당시 등장했다.

10년이 흘러 애플은 다시 기로에 접어 들었다. 1998년 복귀 당시 혁신을 부르짖으며, 제품 라인업을 4개로 정리했던 스티브 잡스도 다시 제품 라인업을 벌려 놓고 있다. 아직까진 성공적이지만(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황금기를 누렸던 애플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언제까지 성공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폰과 애플TV는 혁신적이다. 멋지고 탐나는 물건이다. 그러나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신형 매킨토시와 아이폰(국내 개통 가능하다는 전제)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주저없이 매킨토시를 선택할 것이다. 성공을 위해 애플은 컴퓨터를 버렸지만, 10년 전 그랬던 것처럼 성공을 위해서 다시 컴퓨터를 껴안아야 할지 모른다.

똑똑한 잡스가 이를 모르진 않을 텐데 … 컴퓨터로 이 자리에 선 그가 컴퓨터를 빼버린 것이 이해는 가면서도 못내 서운하다. 그래서 이번 맥월드는 실망스럽다. 그리고 다음번 이벤트에서 발표될 신형 맥과 신형 운영체제에 기대를 건다.

나는 맥유저지 애플유저가 아니기 때문이다.

5 thoughts on “Apple Inc.에 부쳐

  1. LeeLogs

    저는 골수팬은 아니지만, 예전부터 맥을 접했던 올드유져입니다. 글 깊이 공감하구요. 요번 발표 보면서 마음이 조금 어수선하더군요. 노파심도 생기고…
    그런데, 다음번 이벤트는 언제쯤일까요? 기다려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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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qbio

    컴퓨터로 이 자리에 선 그가 컴퓨터를 빼버린 것이 이해는 가면서도 못내 서운하다—라는 부분에 깊이 공감합니다.

    디지털 기기와 컴퓨터의 역할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점입니다. 그럴수록 전통적인 컴퓨터 기업으로서의 애플에서 보다 혁신적인 컴퓨터를 내 놓았으면 좋았을텐데, 왠지 모르게 정공법으로 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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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link

    저도 컴퓨터를 그들의 회사명에서 뺀다고 할 때 좀 서운하더군요. 전 맥유저이기도 하지만 애플유저이기도 합니다. 애플2로 처음 컴을 가지고 놀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이름을 보며 커왔던 저같은 세운상가키드에겐 애플이라는 이름은 맥과는 또다른 의미가 있습니다(파워맥 이전의 맥은 너무 비싸서 범접하기 여려웠죠).
    지금처럼 쿨한 이미지는 물론 매킨토시 개발 이후지만 싸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세계 최초로 실용화한 공로는 맥 이전의 애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당시 애플은 머랄까 더 재미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워즈니악씨가 애플을 떠난 것도 맥이 발표될 즈음이었죠.
    애플 컴퓨터이건 맥이건 애플이건 결국은 동일한 사과인 만큼 그들의 정체성은 계속 되리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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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ineApple

    저 역시 세운상가표 APPLE ][+ 부터 시작했지만, 8비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 = APPLE ][+’였기 때문에 브랜드나 아이덴티티에 대한 개념은 서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그저 컴퓨터 자체를 좋아하는 까까머리 중학생 소년이었죠. ^^

    그 후 대학 와서 매킨토시를 처음 접했습니다. XT/AT PC를 쓰다가 처음 만난 Macintosh LC II는 컴퓨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내 안의 혁명’이었습니다. 혁명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그래선지 매킨토시는 늘 아름다운 이미지로 남아있네요.

    컴퓨터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매킨토시는 시대에 발 맞추어 계속 존재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최초의 PC는 APPLE ][+ 였지만, PC를 PC답게 쓴 PC는 매킨토시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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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yoonoca

    저에게 맥은 꿈 그 자체였습니다. 전시장이나 매장에 있던 클래식이나 LC등을 보면서 어른되면 꼭 저걸 사야지 하고 되뇌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구매력을 가지게 되고 여차하면 지를만도 한데, 최근에 피스모가 고장나 수리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새 맥을 알아보고는 있습니다만 자꾸만 망설이게 됩니다. 이게 불과 3년 전 아이북을 정말 무리해서 구입할 때와는 양상이 틀리더군요.
    베이지의 일체형 맥을 실제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만큼의 파워가 지금의 애플에게 없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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