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초등 2학년 바른생활 문제

초등학교 2학년용 문제집에 출제된 바른생활 문제라고 한다. 한번 도전해 보시길.

1. 다음 중 때와 장소에 어울리게 옷을 입은 어린이는 누구입니까?

(1)보미: 설날에 예쁜 한복을 입었습니다.
(2)진우: 미술시간에 평상복을 입었습니다.
(3)용수: 국어시간에 체육복을 입었습니다.
(4)유나: 등산을 가는 데 예쁜 한복을 입었습니다.
(5)지은: 체육시간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하인아빠님 블로그에서 이 문제를 접했는데, 물론 나는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정답을 맞힌 사람이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난해한(솔직히 말하면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보낸) 문제가 아닐까? 문제에 오타가 있어서 ‘어울리게 옷을 입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울리지 않게 옷을 입은 어린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

문제집 상에서의 정답은 (1)번 하나라고 한다. < -- 드래그하세요 ^^ 그런데 상식적으로 정답은 복수로 존재한다. 하나하나 따져 보자. (1)보미: 설날에 예쁜 한복을 입었습니다. --> 특별히 흠잡을 만한 구석은 없다. 정답 중 하나다. 현실적으로 설날에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 집의 경우 설날과 추석에는 나와 아이들이 반드시 한복을 입는다. 아내는 일하는 데 거추장스럽다며 입지 않는 편이고.

(2)진우: 미술시간에 평상복을 입었습니다. –> 미술시간에 평상복을 입지 미술복(그런 게 있나?)을 입을 리가 없잖아. 즉 이것도 정답이다. 중고등학교라면 평소에 교복을 입으니까 오답이라고 우길 수 있지만, 초등학교 문제니만큼 흠을 찾을 수 없다. 설마 교복을 입는 사립 초등학교 문제인가?

(3)용수: 국어시간에 체육복을 입었습니다. –> 체육 시간에 체육복을 입지 않아서 불편할 수는 있지만, 반대로 국어시간에 체육복을 입었다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될 리가 없잖아? 적어도 내 학창시절(초중고)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것도 정답이다. 국어시간에 체육복을 입었다고 뭐라고 하는 선생님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국어는 물론 영어나 수학시간도 마찬가지다. 교복을 지정해 입는 중고등학교라면 모를까 … 설마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국어시간에 국어복을 입어야 하는 건가?

(4)유나: 등산을 가는 데 예쁜 한복을 입었습니다. –> 등산을 가는 데 한복을 입든 양복을 입든 그건 전적으로 등산가는 사람의 자유지만, 문제가 ‘어울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그렇게 따지자면 오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즉 등산을 가는 이가 스님이거나 도인, 혹은 무속인, 전통 무예가라면 어떻겠는가? 폐백 때 입는 화려한 예식 한복이 아닌 생활 한복이나 전통적인 일상 한복이라면 오히려 더 잘 어울릴 것이다. 등산이라는 개념도 문제다. 히말라야 등반도 아니고 동네 뒷산이나 반나절 코스의 가벼운 등산길에 굳이 등산복이나 등산화를 갖춰 입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5)지은: 체육시간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 생활 체육을 지도하는 초등학교 체육 학습의 특성을 고려하면 대개 체육복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고, 따라서 이 문제 역시 오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에서는 체육시간에 대해 구체적인 정의를 하지 않았다. 즉, 운동회나 특기 발표회를 준비하는 체육 시간일 수도 있고 이런 경우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 것도 가능하다. 얼마 전 우석이 운동회 때 보니까 초등학교 언니들의 발레와 전통 무용 시연도 있었는데, 그런 시연이라면 얼마든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을 수 있다. 내가 아는 어느 부부의 취미이자 특기는 볼륨 댄스이다. 부부가 주말이면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입고서 댄스 발표회나 연습장으로 향한다. 즉, 체육시간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 문제가 정확한 오답이 되려면 질문을 ‘일상적인 학교 체육시간 …’이라고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에서 상식적인 정답은 다섯 가지 예문 모두가 정답이다. 문제가 ‘어울리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예문에 대하여 그에 따른 경중은 따질 수 있어도, 정답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출제한 문제집 저자를 만나 논쟁을 벌여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 만약 그 저자(선생님 or 강사)가 (1)번 만이 정답이라고 우긴다면 그렇게 우기는 만큼 이 문제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미일 게다. 만약 저자가 ‘이건 오지선다 형식을 빌은 초등 논술 대비 시험’이라고 한다면 … 대략 난감 T-T

작은 부분을 꼬집어 낸 논리 비약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하고 싶은 논지는 상식적인 교육이 통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것. 또 그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이 상식이 통하는 세상으로 나와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는 것. 그런 소박한 소망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런 소망이 간절한지도 … 그래서 더욱 이런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지도 모르겠다.

15 thoughts on “난해한 초등 2학년 바른생활 문제

  1. 루미넌스

    정말이지 이런식의 고점관념의 틀에 어린 아이들을 끼워 맞추니까 이나라의 교육은 앞날이 어둡다는 소리를 듣는겁니다.ㅠㅠ
    정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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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새우버거지만 괜찮아

    우리나라는 교육적으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자녀교육을 위해 독일이나 유럽 어디의 역사가 있는 나라로 이민 가라고 하고 싶을 만큼 못되먹은 교육시스템을 자랑합니다. 여기에는 정말 할말이 많은데, 길게 쓰다 말이 샐것 같으니, 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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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UIP

    정답을 자기가 옳게 생각하는 것을 고르느냐, 출제자가 원하는 것을 고려해가며 고르느냐의 문제이겠죠.
    3, 4, 5번은 상식적으로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겠고, (해설도 억지인 감이 있네요) 매력적인 오답인 2번 역시 미술복이라는 알고 있었다면 맞출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딱히 고정 관념 운운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수능도 관점에 따라 답이 달라질 것 같은 문제가 많이 나오지만, 결국 의도를 얼마나 잘 읽어내는가가 중요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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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신정훈

    우리는 주로 배운대로 답을 적죠?
    만일 배우지 못한것에 자기 생각을 적으라 하면 어린이들은 상당히 난감해 합니다.

    제가 배운대로면 확실히 1번 정답 하나네요^^.
    미술할때는 미술복은 아닐지라도 도구사용하면서 옷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덧 입는것이 여러가지 있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배우지 않고 하던대로 생각했다면, 틀린답은 4번 하나네요^^;;;

    국어시간에 체육복을 입어본 경험이 많고, 체육시간에 실제 드레스와 턱시도 같은 옷 입고 공연 연습한 기억이 있습니다. 설날엔 당연히 한복…

    주입식 교육이 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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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FineApple

    UIP / 수능이나 입사용 적성 검사 정도라면 출제자의 의도를 읽어낼 능력을 시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초등학교 2학년 바른생활 문제이고 그 눈높이에서 해석을 해야겠죠.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문제 출제자의 의도를 읽어낼 정도로 고도의 지능을 구사할 필요가 있을까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를 통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경직된 교육 시스템을 탓하는 것이지,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학습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교육하여야할 덕목은(특히 과목이 바른생활이라면) 눈치를 보며 출제자가 원하는 것을 고르기 보다 자기가 옳게 생각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교육 여건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의 존재 자체가 실망스러운 결과인 것입니다.

    물론 이 문제가 교과서가 아닌 문제집에서 추출된 듯하고 이 문제 하나를 보고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문제가 올바른 초등2학년용 바른생활 문제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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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김중태

    어떤 의도로 냈는지는 압니다. 어른 입장에서 봤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나오는 것이죠. 아마 출제자의 의도는 다음과 같았을 겁니다.
    – 설날-한복 (가장 전형적인 풍경이죠)
    – 미술시간-작업복(미대생이 경우 강의 들을 때 입는 정장 차림의 평상복을 입고 작업하지는 않죠. 조각, 도예, 서양화 등 그릴 때 대부분 작업복을 입고 합니다. 최소한 앞치마라도 걸치고 하죠.)
    – 국어시간-평상복
    – 등산-등산복
    – 체육-체육복

    말로는 다 아이들 눈높이를 외치지만 쉬운 일이 아니죠. 저 정도는 애교고, 더 심각한 문제들도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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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zeRe

    전 오히려 파인애플님이 말씀하신 경우들을 다 고려하는게 초딩들에겐 훨씬 어려울 것 같은데요. 1번과 2번이 좀 헷갈리긴 하지만 저 역시도 이 문제의 어디가 그렇게 크게 잘못된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생각하는 법을 길러주는거 좋은 일이죠. 하지만 기껏해야 10여살 되었을 아이들에게 생각하기를 강요하는게 과연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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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작은인장

    글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
    저도 초등학교 다닐 때 도덕같은 과목 점수가 다른 아이들보다 낮은 편이었는데, 그 이유가 님이 지적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적당한 답을 찾아서 문제를 풀곤 했는데 아무리 해도 90점 넘기기가 쉽지 않았었죠. 다른 아이들은 공부 잘하던 못하던 100점 또는 90점 정도의 점수를 받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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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핑백: 江湖人의 逍遙遊

  10. 최진혁

    중고등학교 때의 교육은 출제의 의도를 빨리 파악하여
    그에 맞는 답을 신속히 고르는 것에 초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교육은 아이들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억압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이 옳다고 생각하는 분이 몇분이나 될까요…

    과연 그런 교육을 더 어린 아이들에게까지도 강요해야할까란 의문이 드는군요.

    다양성과 창의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해로운 지는
    극단적인 경우겠지만, 가끔 외래를 찾는 소아 청소년 환자를 볼 때
    소름끼치게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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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하인아빠

    실제로 아이들 문제집을 보시면 심각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집으로 가져오는 숙제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아 아주 답답함을 느낍니다.
    엄마 아빠가 깨어있어야 하겠다고 불끔 불끈 다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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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yoonoca

    어릴적 고호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태양 색깔은 빨갛다’라는 주변 사람 말에 고호 혼자 ‘태양이 왜 빨간색이냐..노란색이다.’ 라고 그래서 친구들한테 왕따 당하고 어머니에게 설득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결국 ‘빨갛다’ ‘노랗다’라는 것도 언어적인 규약일 뿐 그것이 제약이 되어선 안되는데 한 사물에 대해 잣대를 대고 그 이상을 벗어나면 소위’갈구는’현상이 꼭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생각은 다양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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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eiron

    제가 보기에는 1번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초등교육에서든 중등교육에서든 문제를 풀 때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그 문제를 ‘잘’ 푸는 최선의 기본방법이 아닐까요?

    더군다나 “바른생활”문제이니만큼, 상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옳게 생각하는 대로 고르는 것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바른 생활이 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대한민국’이 아니더라도 이런 문제에서 ‘정답’을 고르지 못하는 아이라면, 세상에서 환영 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FineApple님의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소박한 소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상당히 거창한 소망이죠. 아무튼. 그런 세상이 오면 참 좋을 것 같네요. 우리 어른들이 다같이 노력해야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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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핑백: 다음 중 정답은? at FineApple’s Life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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