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감춰진 현실

‘안녕, 준’ 님의 “한국영화, 모두 망해버려도 상관없지 않을까?”라는 블로깅을 읽고 몇 자 적어 봅니다.

몇 년 전에 충무로에서 사진일 때문에 우연히 다시 만난 동창이 있었습니다. 영화 조명 스태프였죠. 당시 영화 ‘쉬리’가 대박을 터뜨리고 조금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충무로에 활기가 돌 즈음이었죠. 그때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회한을 삼키던 그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봐, 영화판에서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번 돈이 모두 얼만 줄 아나? 520만 원이야. 모두 520만 원. 사실 그것도 난 좀 많이 받은 편이야. 편의점 아르바이트만큼도 못 건지는 애들이 태반이지. 이런 착취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10년이 지나도 한국 영화의 발전은 없어!”

10년까지는 아니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관객 1천만 시대에 돌입했고요. 하지만 제2의 전성기라는 한국 영화의 스포트라이트는 제작자와 감독, 일부 주연급 배우 등 소수 몇몇에게만 비칠 뿐, 스크린 뒤에 감춰진 현실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착취 시스템은 별다른 개선이 없어 보입니다. 이현승 감독이 이 문제에 대해 노력한 모습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 큰 효과를 보진 못한 것 같군요.

조명 일을 하던 동창이 아직도 조명일을 계속 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근래 본 한국 영화의 크레딧 자막에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은 것 같다는 걸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때 이후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전직을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영화에 대한 애정과 헌신만으로 삶의 현실을 극복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것도 감독이나 배우가 아닌 스태프의 길이라면 말입니다. 한국 영화의 그늘에서 묵묵히 노력하시는 그분들에게 보다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니, 그분들이 원하는 건 단순한 관심과 격려가 아니라 대가일 겁니다. 자신이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 말입니다.

한국 영화의 감춰진 현실”에 대한 2개의 생각

  1. igooo

    얼마전 강우석씨의 그 문제의 발언을 들었을 때 웃다가 콧물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주연급 배우 출연료 주느라 스텝들 임금을 못주는게 아니란건 알만한 사람들 다 알고 있죠.
    배우들 출연료를 깍는다 한들 그 여유돈(?)이 스텝 임금으로 돌아가는 법도 없고 만일 그런 체계라 해도 욕을 먹어야 함은 변함 없구요.

    영화판을 떠받치고 있는 직간접의 스텝들이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요즘 한국영화의 중흥기라는건 사실 신기루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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