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보면 이순신 장군은 부족한 군량미를 걱정하며 이렇게 말한다. ‘끼니는 비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제 여섯 끼를 먹었다고 해서 오늘 굶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끼니의 잔인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살면서 한두 끼니 정도 굶을 수도 있지만, 어디 늘 그럴 수 있는가. 때가 되면 여지없이 배고픔은 끼니를 재촉하기 마련이다.

결혼 이후 최근까지 하루에 한 번 정도 아내와 같이 식사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아침은 회사 근처에서 토스트나 김밥으로, 저녁때도 술자리다, 야근이다, 이런 저런 약속 탓으로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때문에 일요일을 제외하면 일주일에 많아야 서너 끼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내가 이제 병상에 누워 있으니 삼 시 세 끼를 챙겨 먹는다. 기력을 보충하느라, 약을 먹어야 하느라 매 끼니를 꼬박 챙겨 먹어야 하니, 나야 그저 먹으면 그만이지만, 매번 끼니를 챙겨야 하는 아내의 부담은 날로 늘어만 간다. 본래 요리에 그다지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아내인지라, 매 끼니를 챙겨야 하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몸이 조금 더 회복돼야 스스로 챙겨 먹으련만, 아직은 아내의 손길에 의지해야 하는 나로선 미안할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간사한 게 사람이라 – 미안한 마음은 그대로이면서도 입에 맞지 않은 끼니가 올라오는 날이면 마음으로는 맛있게 먹으면서도 입으로는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은 끼니가 쌓일 때마다 더 늘어만 간다. 비축할 수 있는 끼니라면 예전에 먹었던 만큼 건너뛰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루에 세 번씩 그렇게 잔인함을 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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