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을 던지지 못하겠다.

일부 고위층의 국적 포기 실태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드러나기 시작하자 세상이 시끄럽다. [뉴스 기사 보기]

하긴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사항 중 하나인 병역 문제를 건드렸으니 오죽하랴.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고위층이건 하위층이건, 부유층이건 서민층이건, 자식 잘되게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이 어디 다르겠는가? 다만, 고위층일수록, 부유층일수록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몫이 좀 더 많은 거겠지. 그런 거다. 지위가 높을수록, 돈이 많을수록 처신을 삼가고 책임이 더해진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자식에 대한 조건 없는 애정 앞에선 그런 책임과 상식도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두 아이의 아빠다. 두 녀석 모두 십수 년 후엔 군대에 가게 될 사내 녀석이다. 자, 이제 돌을 던지라고? 아아 …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도 가능했다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

아내가 첫째 아이를 가져 배가 점점 불러 올 무렵, 그러니까 2001년 봄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p선배가 안부 전화를 통해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게 전해 주었다. 이른바 ‘원정 출산’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엔 아직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고, 이슈화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부 여행사나 유학원 등에서 공공연하게 원정 출산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보통 미국령인 괌이나 사이판을 대상지로 삼는 산모들이 많았고, 현지에서 소문이 안 좋게 나자, 막 그 대상지가 LA 등 미국 본토로 바뀌고 있던 시점이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정도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미국 국적을 취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잠재적인 이득을 생각하면 치를만한 대가다. 나도 한때 유학 준비를 한 적이 있다. 국적 여부에 따라 미국 내 대학 학비는 계산 단위가 달라진다는 걸 잘 안다. 유학생 신분으로는 얻을 수 없는 사회 보장이나 의료 서비스까지 제공받을 수 있다. 적어도 공부를 하기 위해 도미를 하게 된다면, 현금 1억 원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게 바로 미국 국적이다.

나름대로 알아보니 산모가 건강하고, 임신 7개월 이전이면 비행기 탑승이 가능하고 비용은 두어달 산후 조리 기간까지 포함해서 대충 2천만원 남짓. 아아 … 그때 아내에게는 반 농담 삼아 얘기했지만,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 내 통장에 잔고가 2천만 원이 있었고 조금만 더 과감했더라면, 첫째 아이의 이름은 우석이가 아니라 David가 됐을지도 모른다. -.,-

그렇게 흐지부지 지나고 … 여름이 오니 아니나 다를까 원정 출산 문제가 처음으로 뉴스를 타기 시작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원정 출산이든, 부동산이든, 증권이든 소위 있는 사람들 대한 소식은 언제나 뉴스가 한발 늦는다는 걸. 아니, 그들이 한발 앞선다는 게 더 정확한가?

시간이 흘러, 둘째가 태어나면서 그때의 아쉬움도 잊었다. 만약 첫째 아이를 보냈다면, 둘째도 마땅히 보내야 하는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처량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내겐 그럴 경제적 능력이 없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나도 아이에게 외국 국적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 기회를 놓쳤고, 기회를 놓친 원인은 거의 95% 내 빈약한 경제적 능력 탓이다. 나머지 5%만이 내 알량한 양심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이슈에 대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돌을 던지지 못하겠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 묻고 싶다. 왜 나는 그들처럼 가지지 못했는가? 왜 나는 그들처럼 성공하지 못했는가? 왜 나는 그들처럼 과감하지 못했는가?

십수 년 후, 첫째 아이가 군대를 갔다 오면, 그때 한번 물어볼 것이다. 예전에 아빠가 외국 국적을 취득해주지 못한 것이 원망스럽냐고? 지금은 아이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짐작할 수 없다. 시대는 … 늘 바뀌니까.

나는 돌을 던지지 못하겠다.”에 대한 5개의 생각

  1. 하인아빠

    하인이의 영어이름이 Charline이죠……
    솔직히 언젠가 혹시나 싶어서 미국 국적도 가지고 있습니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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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igooo

    ‘미국 시민권’과 ‘한국 시민권’이란 상품이 시장에서 경쟁한다면 이미 이건 게임이 안되는 상황이라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핵심적인 요약 아닌가 싶더군요. 씁쓸하긴 하지만 말이죠.
    적어도 공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병역기피성 국적포기, 원정출산 하는것은 ‘노블리스오블리제’를 들먹여 비판할 여지는 있지만 그냥 경제적 능력이 있어서 혹은 어쩌다 여건이 되어 그런 선택을 하는 보통(?)의 사람들을 그토록 쉽게 ‘그들’이라고 분리해 내어 돌을 던지는 분위기는 솔직히 이상스레 불편하더군요.
    했느냐 안했느냐(혹은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의 표면적 차이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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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김중태

    저 또한 원정출산이나 국적포기 자체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이유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좀더 나은 환경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죠. 강남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더 넓고 좋은 집을 구하는 것도, 비싼 학원에 다니는 것도 비난 받을 일이 아니죠.
    다만 거짓말 하지 않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고, 특히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능력으로 좀더 나은 기회와 혜택을 받으려는 행동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비난받을 이유는 없을 겁니다.
    (비열한 놈하고 위선자들은 정말 싫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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